힐링 가든으로 돌아온 청재설헌에서의 기억
거의 8년이 지난 것 같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면서 우연히 인터넷에서 알게 된 청재설헌은 내가 좋아하는 노출 콘크리트조의 블록형 건물이 내 마음에 쏙 들었던 집이다. 늦은 시간에 렌터카를 타고 도착한 서귀포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청재설헌은 호텔같은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B&B형 펜션이다. 잠을 자고 제주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아침식사까지 함께 제공되기에 나름대로 그냥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서 B&B는 내가 매력을 느끼는 스타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매력으로 인해 청재설헌은 처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집이었다. 그 해 여름에 본 청재설헌은 작은 갤러리가 있고, 수련이 심겨진 네모난 연못이 있고, 노출콘크리트조의 마감이 보기좋은 깔끔한 몇 개의 객실이 있는 데다가, 주변의 곳곳에 심겨진 나무와 식물들이 아늑한 느낌을 함께 주는 그런 집이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주인장인 김주덕 여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층에 있는 아담한 식당에서도 나름대로 주인장이 직접 꾸며가는 집의 이야기가 한껏 묻어나는 집이었다. 마당에서 처음으로 샤프란을 보고 너무나 깔끔한 이미지의 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도 가꾸고 싶은 꽃이라는 동경을 늘 하고 있었다.(우리 집에도 작년에 아내가 어딘선가 구해온 샤프란이 화단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샤프란을 보면서도 늘 청재설헌의 마당에 심겨져 있던 그 샤프란들을 떠올린다.)
후에, 이 집에 음악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게시판에 언젠가 좋은 음악들을 CD로 만들어서 보내주겠다고 약속하고, 후에 다시 들르게 되면 직접 전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오다가 어느새 8년이 되었다. 사실 재작년에는 제주도에 있는 후배와 장필순, 조동익씨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 다시 한번 들르려고 마음먹고 예약을 했는데 마침 주인장께서 육지로 볼일보러 가시는 기간이어서 결국은 무산이 되었다.
그런데, 그 청재설헌이 힐링가든이라는 책으로 돌아왔다. 못 가본 그 8년 사이에 엄청난 수목들이 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내가 단독주택에 살면서는, 이렇게 마당을 가꿀 수 있는 정성은 천성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능력이 아니면 안 된다는 확인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 땅에 친해지지 않은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정원만들기인데, 책 속에 담겨진 사진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세월과 정성을 이 땅에 쏟았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다시 한번 청재설헌으로 가고 싶어진다. 8년 전의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그 세월동안 무수한 진화를 한 청재설헌을 확인하면서 집은 역시 이래야 집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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