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신동엽-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신동엽-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재미난 꿈을 꾸었지.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다가 발 아래 아시아의 반도 삼면에 흰 물거품 철썩이는 아름다운 반도를 보았지.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 아름다운 인생/詩人 2013.07.31
세 가지 선물 -박노해- 세 가지 선물 - 박노해 - 나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은 단 세 가지 풀무로 달궈 만든 단순한 호미 하나 두 발에 꼭 맞는 단단한 신발 하나 편안하고 오래된 단아한 의자 하나 나는 그 호미로 내가 먹을 걸 일구리라 그 신발을 신고 발목이 시리도록 길을 걷고 그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저녁.. 아름다운 인생/詩人 2011.07.01
연탄 한 장 -안도현-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 아름다운 인생/詩人 2011.02.28
담쟁이 -도종환-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 아름다운 인생/詩人 2011.02.28
가재미 -문태준-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 아름다운 인생/詩人 2005.04.24
歸天 -천상병- 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아름다운 인생/詩人 2004.02.27
접시꽃 당신 -도종환-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읍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 아름다운 인생/詩人 2004.02.27
홀로 서기 -서정윤- 홀로 서기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서정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 아름다운 인생/詩人 2004.02.27
신혼일기 -박노해- 신혼일기 -박노해- 길고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기인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바삐 팽개쳐진 아내의 잠옷을 집어들면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 아름다운 인생/詩人 2004.02.27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 아름다운 인생/詩人 200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