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 첫 해외여행으로 다녀온 런던에서의 5일간은 그저 단순한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여행 일정의 대부분은 시차 적응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몽롱하게 지냈던 것 같고, 하절기여서 해가 늦게 지다보니 날은 훤한 저녁 9시에 졸음이 쏟아지기 일수였다.
오죽하면 그 좋았던 Royal Albert Hall에서의 B.B. King의 공연 내내, 졸음에 겨워서 보는 둥 자는 둥 그렇게 두 시간 여를 보내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허탈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오던 기억이 선명할 정도니...
런던은 비행기가 히드로 공항에 내려서던 그 순간에 창 아래로 내려보던 주택들의 가지런한 지붕 색채가 먼저 눈에 들어와 도시 전체가 인위적으로 디자인된 듯한 모습에 우리네의 무질서한 건축 형태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런던의 시가를 걸으면서는 오래된 도시의 정연된 모습과 피카딜리 서커스 주변의 상가에 오래된 석조 건물들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정연한 디자인 체계를 갖추고 있는 듯 한 느낌이 역시 우리네와는 달라 보였다.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정갈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고건물에 대비되는 런던의 대표적인 색상은 역시 런던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빨간 전화부스와 빨간 이층버스...
런던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지루해서 스코틀랜드로 가려다가 우리가 예정한 일정의 항공료가 너무 비싸서(영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요일별로 항공료가 차등 운영되고 있어, 싼 날과 비싼 날의 차이가 거의 2-3배 정도였던 듯...) Dover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숙박 예약도 미리 하지 않고 무작정 Dover로 가던 버스 안에서 보게된 초록색의 넓은 초지가 런던에서 느낀 두번째의 색깔이었고, 마지막은 Dover의 유명한 White Cliff에서 접한 하얀 절벽... 그래서, 5일간의 런던 여행은 빨간색의 기억이 대부분이고 그 나머지는 초록과 백색으로 남겨졌다.
여행 자체를 음악과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보던 그 당시의 내 느낌으로도 런던은 옛날과 지금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최소한 문화적으로는 오래된 전통이 남아 있는 반면에 항상 전세계의 새로운 문화적 시도는 영국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
단 5일간의 런던 여행은 그런 느낌을 가진 내게는 항상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못 본 것이 너무 많다.
언젠가 다시 런던으로 가고 싶었던 내 마음에 런던 디자인 산책(김지원)은 불을 지펴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런던을 다시 보게 되리라.
주부가 아님에도...
요리를 취미로 하고 싶은 내게 가끔은 요런 그릇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느껴진다. 디자인은 아이디어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는 힘인 것 같다. 색상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호감이 가는데 기능이 갖춰진 디자인이라면... 더할 나위없다.
펭귄북스의 디자인은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용적이어서 마음에 남는다. 특히 장식적 의미까지 가미한 표지 디자인의 기능성은 아늑하면서도 고차원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와인잔 같은 소주잔...
소주잔으로 쓴다해도 훌륭할 잔들에서 디자인의 차이를 느낀다.
저자 김지원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중을 위한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디자이너로 일해오면서 사물을 만드는 이의 정성과 쓰는 이의 애정이 비례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그녀는 디자인에 있어서 무척 까다롭다. 뭐든 쉽게 만들고 또 부수기를 반복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깐깐함’은 디자이너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모닝글로리 디자인 연구소 팀장을 지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디자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에 있는 동안 인터넷매거진 〈디자인정글〉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에게 디자인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 서적을 고민하다 이 책을 쓰게 되었다. 2012년 현재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문화상품개발팀장으로 일하며 사람들이 디자인을 통해 우리의 옛것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책의 내용
01 오래된 것의 가치 OLDIES BUT GOODIES
1-1. 빗속에서 Street in the Rain
1-2. 아주 오랜 친구 Durable Friendship
1-3. 삶을 위한 여분 Room for Life
1-4. 차 한잔 할까? Fancy a CUPPA?
1-5. 허물지 않기 Not Knocking Down
1-6. 박물관의 진화 Evolution of Museums
02 인간과 환경을 생각하는 디자인 철학 DESIGN PHILOSOPHY IN FAVOUR OF THE HUMAN ENVIRONMENT
2-1. 겨울밤 A Winter Night
2-2. 런던의 다리 The Legs of London
2-3. 윌리엄 모리스의 집 The House of William Morris
2-4. 최소와 보편 Utility and Universality
2-5. 도시를 구하는 천사들 Angels that Save the City
2-6. 자연의 색 Colours of Nature
03 잠들지 않는 디자인의 도시 THE SLEEPLESS CITY OF DESIGN
3-1. 도시는 스케치북이다 The City is a Sketchbook
3-2. 패치워크 조각들 Pieces of Patchwork
3-3. 경계를 잇다 Sewing Boundaries
3-4. 런던의 오픈 스튜디오 Open Studios in London
3-5.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London Design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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