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Classical Experience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김종욱 2005. 4. 30. 21:38

 
 
아르페지오네,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
슈베르트의 유명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플레이어에 걸면, 난 잠시 '아르페지오네'란 악기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들게된다. 생긴 모습도 제대로 모르는 악기에 대한 감상에 젖어들도록 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곡에서 내가 느끼는 가장 아름다운 감흥이기도 하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막연한 동경, 그리고 내가 모르는 악기에 대한 쓸쓸한 느낌...
이런 느낌을 주는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는 원래 1823년 빈에서 슈타우퍼 (G. Staufer)가 발명하였는데, 그가 부른 이 악기의 정식 명칭은
<기타아 첼로>(Guitarre-Violoncell) 또는 <사랑의 기타아>(Guitarre d'amour)였다. 기타처럼 8자 모양의 생김새로 6개의 현이 있는 기타와 비슷하지만 기타를 활로 그어 소리내 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악기로서 연주는 무릎 사이에 놓고 활로 켜는 방식으로 하였고 그래서 '기타 비올론'이나 '활로 켜는 기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려졌다. 기타와 같은 6줄(개방현 조율도 기타와 똑같은 E, A, D, G, B, E로 했다)로 이루어진 현악기이며, 24개의 지판(fret)도 있었다. 여러개의 줄을 한꺼번에 누르기에 용이하여 화음을 울리기가 쉬웠고 소리가 기타처럼 부드럽고 친근하였지만 활로 켜는 악기에 현이 6줄이라는 것과 지판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결점이 될 수밖에 없는데, 현의 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지판이 찰현악기 특유의 비브라토 연주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타와 첼로의 장점을 갖추어 한때 인기가 있었던 악기지만 그러한 점이 결국에는 결정적인 취약점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지 몇년 안되어 사라졌고, 그 이후에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란 작품명만으로 겨우 그 이름을 전하고 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슈베르트는 악기가 발명된 이듬해인 1824년에는 슈베르트의 나이 27세였고, 그 해 5월부터 10월초까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찌 백작 저택에 초대되어 머물었다. 여기서의 쾌적했던 생할 탓으로 정신적인 건강을 회복하였고 헝가리로부터 빈으로 돌아온 11월에 르페지오네를 위해 3악장 구성으로 소나타를 만들었다.
정식으로 이 곡의 악보가 출판된 것은 1871년으로, 그 당시부터 이미 아르페지오네는 자취를 감추고 있었으므로 바이올린과 첼로용 부분 악보가 같이 딸려 나왔다. 1886년 슈베르트 전집이 처음 발간되면서 비로소 '피아노와 아르페지오네 혹은 첼로를 위한 소나타'라는 정식 제목을 달았으나 연주에서는 이미 첼로가 아르페지오네를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원래 아르페지오네는
첼로보다 높은 음역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소나타에는 높은 음을 풍성하게 쓰고 있어서 오늘날의 첼로로 연주하려면 매우 높은 기교가 요구된다.

작품 전체에 낭만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우수의 정감과 함께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흔히 드러나는 비장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삶의 특질을 기쁨이라는 기본 정서에 두고 누구에게난 찾아오는 그런 류의 우울한 정서를 교차시키는 양면적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기쁨의 감정이든 슬픔의 감정이든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정서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느낌에 그윽한 삶의 향기가 풍겨지는 아름다움이다.
 

 
제 1 악장
소나타 형식의 알레그로 모데라토이다. 피아노에 이어 곧 첼로가 우수를 머금은 제1주제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낭랑하게 울리는 첼로라는 저음악기의 독특한 음색이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펼쳐준다. 제2주제는 좀 밝으며 전개부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그러나 제1주제의 인상이 지배적이다. 코다는 미끄러지듯이 유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간직한 첼로의 노래로 끝난다.
제 2 악장
아다지오는 첼로가 연주하는 칸타빌레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변주 형식의 부분이 전개된다. 마음껏 첼로의 저음으로 연주되는 이 가요 악장은 진주의 눈물 방울로 5선지에 적어 넣은 듯 눈부시게 영롱하다. 첼로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그렇다. 슈베르트가 쓴 곡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 3 악장
알레그레토이며 론도 형식이다. 쾌활함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만 끝에서 다시 우수 속에 잠기는 첼로의 탄식은 깊은 인상을 아로새겨 준다.
 
 

 
 
Leonard Rose & Leonid Hambro

20세기 최고의 음악교육자이자 음악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던 레너드 로즈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연주를 담은 이 음반은, 이 곡을 가끔 접하면서도 약간은 무신경하게 스쳐지나가기도 했던 내게는 혜성과도 같은 존재였다. 1955년에 LP로 발매되었던 음반이 Sony Classic이 2001년에 CD로 발매한 음반이다.
이 음반에 실린 그의 연주는 유달리 독특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서정성이 존재한다. 특별한 서사적인 느낌이 없는 곡이고 진행이 비교적 빠른 연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에서는 슬픔의 감정이 복받쳐오른다.
격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선굵은 그의 연주 때문인지는 아직은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연주가 뛰어나니 마느니 하는 류의 음악적인 평은 뒤로 물려두고서라도 그의 연주는 수십번을 들어도 심장을 뛰게 하는 신비로움이 묻어있다. 마치 비오는 날 소주 생각이 나듯이...
 
 
Mstislav Rostropovich & Benjamin Britten

관현악에서 카라얀의 연주를 가장 평이하고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연주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내게는 있는데, 그 고정관념은 곧 그 연주를 항상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버릇으로 작용한다. 첼로에 있어서는 로스크로포비치가 그 역할을 한다.
그러한 역할은 그의 연주를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안점감을 제공하고 있고, 언제나 세월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의 연주로 듣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언제나 깊은 맛과 윤기나는 현의 질감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
 
 
Guitar Version : John Williams & Australian Chamber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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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첼로로만 듣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의 기타 연주 버전은 전설로만 남은 악기 '아르페지오네'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비록 확인할 수는 없지만)작은 도움을 주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어떤 악기로의 편곡보다 기타 편곡은 이 곡에 잘어울리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반대로 이 곡이 기타의 맛을 느끼게 하는 데에 훌륭한 곡이라는 느낌까지 같이 드는 것을 보면 아르페지오네가 첼로와 기타의 중간쯤 되는 악기라는 설명이 실감이 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