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Again/국내여행

여수에서의 하루

김종욱 2022. 3. 6. 17:23

2022년 3월 1일 (화)

 

 

 

0. 프롤로그
 

오랜만의 가족 여행이다. 작년 2월말에 둘째아들 규민이가 항암치료를 시작하고 거의 1년이 지났다. 이제는 먹거리를 가리지 않아도 될 단계가 되어서 평소와 다름없는 조건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년전부터 작정만 하다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술관같은 섬, 연홍도가 이번 여행의 목적지이다. 가는 길에 여수를 들러서 1박을 한 후에 둘째날에 연홍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수를 향해 집에서 출발한 시간이 대략 오전 11시 무렵이니 3시간 정도가 걸린 여정 후에 2시 무렵에 여수에 도착했다. 

 

최근에 예전처럼 밤늦게 술을 마시거나 일을 할 일도 없어서 잠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런데고, 여수로 가는 3시간 정도의 여정 중에서 나는 1시간 정도를 운전하다가 졸음이 와서 큰아이와 운전을 교대했다. 회사 다니던 시절에는 1시간 정도만 운전하면 졸음이 올 정도로 일과 저녁 술자리의 피로에 찌들어 살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벗어난 최근 3년간에는 저녁 술자리가 엄청나게 줄어든 탓에 거의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다보니 오랜만에 느끼는 몸의 피로감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운전을 교대해줄 운전병 출신의 아들이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1. 여수의 철물점
 

여수에 도착해서 여수연안여객터미널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주차장을 나서면 바로 이순신광장이 있다. 일정이 그리 넉넉치 않기에 숙소를 잡은 돌산도 근처만 보기에도 빠듯하다. 아예 점심식사도 이 근처에서 하고 오후 나절을 주변만 보다가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점찍어둔 맛집으로 가기 위해 이순신 광장으로 향하던 중에 다른 동네에 왔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은 첫번째 장소가 선구점 거리에 있는 철물점이었다. 여느 철물점과는 다르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커다란 닻들이었다. 바닷가 항구의 철물점답게 선박에 필요한 철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서도 커다란 닻들을 보는 순간 철로 만든 커다란 닻 하나 사오고 싶다는 구매 충동이 생겼다. 일단은 참았다. 녹슨 닻에 페인트칠을 예쁘게 해서 마당에 꽂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런 상상을 잠시 해보지만 역시 상상은 상상만으로...

다음번에 이 닻들을 봤을 때에도 또 사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일단은 구매 충동을 가라 앉혔다.

 

 

 
 
 
 
2. 이순신광장

 

여수의 이순신광장에 대리석 벽체로 설치된 홍보물들을 보면서 지속가능할 수 있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은 웬만한 관광지의 필수가 되어버린 벽화거리들에서는 그런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미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처음 무언가를 기획할 때 소위, 뒤를 생각하지 않는 무성의함 혹은 무책임함이 남기는 흉물같은 결과와 그런 것들을 지속가능하도록 관리하지 않는 행정관료들의 무책임함, 이런 것들이 우리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대리석에 새겨진 기록들을 보면서 이 일을 한 이들의, 어떤 확신감 같은 것이 전달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다.

 
 
 
 
 
 
 
 
3. 게장정식과 서대회정식
 

이순신광장에서 진남관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우리가 점찍어둔 맛집이 있다. 간단히(실제로는 간단하지는 않지만) 백반으로 점심식사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 식당 앞에 대기줄이 길다. 우리 가족들은 줄서서 무얼 먹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 맛집들을 찾는 이들은 그냥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해서 가는 이들이 많고, 평들은 대체로 반반이다. 우리도 호기심에 점찍어둔 식당이기는 하지만, 멀리서 대기줄을 보고 근처에 가지도 않고 다른 식당을 찾았다. 마침 그 전에 보이던 식당 하나가 있고 메뉴가 비슷해서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양이 많아 보이지만, 맛이 있어서 결국 다 먹고 나왔다. 점심 한번 거하게 먹었다. 모두들 맛과 양에 만족을 한다. 

 

 

우리가 시킨 메뉴는 게장정식과 서대회정식이다. 각각 2인분씩.

서대회무침
게장 중에서 양념게장
게장정식 중에서 간장게장과 새우장(게장정식에는 새우장이 함께 나온다)

 

건배사로 자주 쓰던 '드숑마숑'... 주류전문점의 상호로는 그만인 이름이다.

 

 

 

4. 몽이네예나눔의 벽화

 

점심을 먹고서 진남관 쪽으로 갔지만 진남관은 아직 공사가 완료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앞에서 가장 예쁜 벽화를 발견했다. 오늘이 삼일절인데 벽화의 내용이 오늘과 딱 맞는 내용이다. 그림도 잘 그렸고, 캐릭터들도 예쁘다. 작가인 '몽이네예나눔'에 대해서 급관심 증폭...

 

작가 '몽이네예나눔' 대표 신동현 작가 인터뷰

https://www.minjok.or.kr/archives/109007

 

 

 

 

5. 고소1004벽화마을

 

이제는 어디로 갈까... 볼려고 하면 볼 것이 너무 많으니 그냥 단순화시켜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소천사벽화마을을 돌아보면서 걷기로 했다. 나중에 보니 우리가 있던 그 곳이 우리가 걸어야할 코스의 마지막 지점이었다. 일단 시작점을 향해서 해안길을 걸었다. 조금 걸어가니까 고소천사벽화마을의 입구가 보였다. 벽화작업을 한 지 오래되었는지 마을에 있는 벽화들이 많이 낡아있다. 좁은 골목길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마을을 걷다보면 그 곳에 거주하시는 주민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런 벽화마을을 조성하면 대개는 수혜를 보는 이들이 카페나 펜션같은 상업적인 시설들이고, 그 시설들은 대개가 외부의 자본이 들어와서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큰 규모로 만들어져서 다소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한다. 여기도 그런 느낌이 강하다. 기존의 주민들과 외부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상업시설들과 꽤 거리감이 느껴진다. 주민들이 많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다. 게다가 벽화들이 점점 낡아가고 있는 상태이다. 이 정도가 되기 전에 다시 채색작업을 하든지 아니면 관리가 용이하고 지속가능한 매체로 바꾸는 것이 적극적인 자세인데 다소 시기를 놓쳐버린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지금은 이 벽화마을의 이용 가치가 떨어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마을에 벽화를 그리든 혹은 다른 방법으로 마을을 관광자원화해서 외부에서 관광객들을 유입시키려 할 때에는 반드시 주민들이 수혜자가 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동네사람들이 장사를 하는 소위 '업자'들이나, 외부의 자본가들에게서 소외되는 마을은 결국 지속가능한 상태가 되지를 못한다. 하여튼 그런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썩 편치가 않다. 

 

 

벽화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허영만 작가의 그림들이 초입에 그려져 있는데, 그 옆의 새 모양은 꼬막 조개로 만들어져 있다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풀들이 자라고 관리가 안되어서 안타까운...

 

좋은 그림들이 오래 되어서 색이 벗겨지고... 작가가 보면 마음이 아프겠다.
이런 거대한 상업시설이 동네와 어울리는가 모르겠다. 
재미있는 포인트이지만, 기타 줄이 다 망가져 있다. 그 옆에 지가 처먹은 것도 안 가져가는 나쁜 넘도 다녀간 듯... 이런 넘이 가장 싫다. 처먹지를 말던가...
아파트와 카페와 주민들의 주택이 잘? 어우러지는가 ???

 

그나마 이 곳이 아직은 멀쩡하다. 최근에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늘 코스의 가장 높은 곳인 오포대에 있는 '별 따는 소년'의 조형물.
예전에는 12시를 알리기 위해 이곳에서 대포를 쏘았다고 한다. 처음 알게된 사실...

 

 

6. 맛집들 풍경

 

벽화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니 결국 원래의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오포대 이후로는 벽화마을이라는 의미가 별로 없어보이는 그냥 도시의 구주택가들을 걸어왔고, 다시 약간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상가로 오면 어김없이 인터넷 상의 맛집들 앞에서 줄을 서있는 사람들...  

여수의 거리에서 남다른 점 하나는 가게마다 광고 카피를 하나씩 걸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상업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도시가 통영이 아닌 여수라는 느낌도 받는다. 

 

 

 

 

7. 여수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걷다가 보니 뜻밖에 만나게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8. 장어샤브샤브

 

숙소에 들렀다가 숙소 아래에 있는 하모샤브샤브 전문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하모는 여름철이 제철이어서 대신에 우리는 장어샤브샤브를 먹었는데, 가격이 워낙 만만찮다. 점심식사도 거하게 했지만, 돈이 아까워서 또 한상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다 먹고 말았다. 상은 푸짐한데, 점심식사 때에 비해서 가성비는 낮은 편이다. 그냥 장어샤브샤브를 먹어보기 위해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선택은 했지만, 함께 나오는 그 푸짐한 음식들의 맛은 그냥 그저 그랬다. 이 정도는 경주의 바닷가에서도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으니, 그냥 장어샤브샤브만 주고 가격을 좀 더 낮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 장사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겠지...

 

 

장어샤브샤브.mp4
12.03MB

 

 

9.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를 산책했다. 원래는 숙소에서 출발해서 약 7km의 코스를 한 바퀴 걸어서 다시 숙소로 가는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추웠다. 옷도 충분하게 입고 가지 않은 탓도 있지만, 밤이 되니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세게 불어서 숙소에서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고, 포차거리를 지나 낮에 갔던 이순신광장까지 걷고 택시로 다시 돌아왔다. 야간에는 아무래도 경관조명이 잘 되어 있어서 날씨만 좋으면 저녁시간을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날이 차니까 여수 밤바다고 뭐고가 없다. 그냥 걸어다니면서 볼 것만 보고 다시 숙소로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