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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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스스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요즘은 시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도서출판 작가가 시인 문학평론가 등 문인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 오늘의 시’ 설문조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가장 좋은 시인’으로 꼽힌 문태준(35·불교방송 PD) 씨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이번 조사에서 ‘가장 좋은 시’(가재미)와 ‘가장 좋은 시집’(맨발) 등 세 부문에서 문인들의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요즘은 시인의 성정(性情) 같은 게 생겨나고 있는 듯합니다. 시인은 마음 안과 밖이 트인 사람이죠.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들의 고통스런 내력을 보게 되고 안쓰러운 감정이 생깁니다. 그래서 나와 그의 주고받기가 상처가 되지 않게,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 안는 그런 관계가 뭘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죠.”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된 ‘가재미’는 지난해 현대시학 9월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낀 처연한 연민을 그렸다. 이 시에서 그는 임종을 앞둔 ‘그녀’를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을 그렸다. ‘그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긴 그렇지만 어머니 다음으로 좋아했던, 살붙이나 다름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는 큰어머니라고 밝혔다.
“이 시를 쓰고 난 뒤 탈진할 정도였어요. 한 번에 써내려갔지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할 때 오랫동안 망설여지고 힘들었습니다.”
한쪽 눈이 다른 쪽으로 옮겨 붙어 한쪽 밖에 볼 수 없는 가자미처럼 “그녀는 죽음만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아야만 하는” 고통 때문이었다.
‘가장 좋은 시집’으로 꼽힌 ‘맨발’(창비)은 지난해 조사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같은 제목의 시를 표지 제목으로 묶은 것이다.
문인들이 그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문씨는 “독자들과 달리 직접 시를 쓰는 분들이 내 시를 보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는 “서른다섯 살의 젊은 시인의 작품에서 묵은 맛이 나면서 끝 맛은 약간 쓴 맛이 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어떤 사상 같은 게 두드러지진 않지만, 존재론적 문제와 생명과 생명 사이의 관계 등 본질적 가치를 묻는 대목에서 다른 맛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성복 시인은 그를 두고 “어찌 보면 늙은 아이 같고 아이 늙은이 같다”고 평했을 것이다. 성(性) 등 직접적 화두를 다루는 요즘 젊은 시인들과 달리, 그의 시들은 농촌이라는 공간과 생명, 시간과 속도 등 거대담론에 관한 고민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문 씨에게 시 청탁이 부쩍 늘었다.
“그럴수록 스스로 단속해야죠. 시에 대해 더욱 철저해야 하고 막 써내는 일이 없도록 해야죠.”
한편 ‘2005 오늘의 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좋은 시인으로 문 씨에 이어 문인수, 박형준, 김명인, 천양희 시인이 꼽혔다. 개별 작품으론 ‘가재미’에 이어 문인수의 ‘꼭지’와 박형준의 ‘춤’이 뒤를 이었다. 시집은 ‘맨발’에 이어 나희덕의 ‘사라진 손바닥’, 유홍준의 ‘상가에 모인 구두들’, 박시교의 ‘독작’, 이재무의 ‘푸른 고집’ 순이었다. 개별 작품들은 단행본 ‘200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로 출간됐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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