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Again/지리산과 둘레길

우리 가족의 걷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김종욱 2010. 7. 30. 21:12

 

 

언제부터인가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주변 경관을 보면서 마음 편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걷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체력이 약한 편이고 산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렇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막상 어딘가를 걸을 기회가 가끔 생기면서 다시금 생각해보니 산에 오른다는 것은 내가 싫어하는 그 무엇 - 누군가를 이기고 무언가를 해내야하는 정복과 경쟁의 심리 - 를 생각케도 하거니와, 내가 산에 오르는 그 시간의 대부분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무작정 목적지만을 생각하면서 가야된다는 점 때문인 듯 했다. 걷기도 목적지만을 향해 간다면 역시 피곤하고 다리만 아픈 일이기도 하겠지만 체력이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내게는 산에 오르는 것보다는 걷는 것이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은 방법인 듯 했다. 걷는 것도 10여 킬로를 넘어서면 나름대로 넘어서야 하는 체력적인 한계점이 있지만 그래도 내겐 훨씬 부담이 없는 방법이고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디디면서 보게 되는 이런 저런 풍광의 즐거움과 함께 가는 이들과 나누게 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 속에서 맛보는 행복감이 함께 하고, 혼자서 걸을라치면 기분좋은 고독이 함께 하는 이른바 과정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걷기는 오랫동안 내게 마음 속에서만 소망해오던 바램이었다. 이미 수년전부터 아내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고 꿈꾸어왔다. 그것이 동해바다가 되든, 제주도의 올레길이 되든 상관없이 어디든 조용히 우리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이 아닌, 가는 여정 모두를 함께 겪을 수 있는 그런 걷기 여행을 꿈꾸어왔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하고 싶었고, 아이들에게도 달콤하지는 않지만 진짜 여행같은 여행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던 내게 제대로 한번 걷기의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계기는 2007년 8월에 나아지역아동센터의 여름 프로그램을 구상하면서 부터이다. 아이들에게 극기의 기회를 주고 싶었던 여름캠프 프로그램으로 걷기를 하기로 작정하고 준비한 '백리길 희망원정' 이었다. '백리길 희망원정'은 아이들과 함께 경주의 보문단지 일대로 시작해서 토함산을 넘는 100리길(약 40Km)의 코스를 이틀동안 걷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여름날의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즐거웠던 걷기의 기억으로 남았던 행사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 가족들과도 긴 여정을 함께 걸으면서 그냥 차를 타고 지나치는 여행이 아닌, 길 위에 펼쳐진 여러 광경들을 좀 더 천천히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가는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마음 속에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마음에 담아온 몇년동안의 시간 속에서 걷기가 생각보다는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본격적으로 걸을 수 있는 길들이 화제로 떠오르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걷기를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주도의 올레길을 걸어보러 갈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주도의 올레길 자료를 찾으면서 좀 더 가까운 곳을 알게된 것이 지리산의 둘레길이었다. 예전부터 지리산을 올라보고 싶은 생각은 많았지만 아이들이 아직은 어리고 우리 가족이 등산을 그리 즐기지 않는 탓에 마음에서도 쉽사리 와닿는 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온 걷기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지라 지리산 둘레길은 쉽게 현실로 다가왔다. 그동안 다섯번 정도 다녀온 제주도는 아직도 여전히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은 많았지만 마지막에 한라산을 올라갔다 온 이후로는 올레길에 대한 미련만 계속 가지고 있었다. 제주도의 올레길 걷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코스와 맞지 않는 일정 때문이었다. 제주도의 올레길은 우리 가족이 함께 다 돌아보려면 최소한 2주 정도는 필요한 듯 했다. 한꺼번에 2주간을 제주에서 머무르기도 어렵지만, 여러번으로 나누어 가보기에도 어려움이 있어 몇 개의 코스만 추려봐도 최소한 4-5일은 걸릴 듯 했다. 제주도의 올레는 일단은 한번에 기본적인 코스를 둘러보고 나중에 기회날 때마다 다른 코스들을 음미해보는 것이 좋을 듯 했지만, 문제는 그 한번을 이루어내는 것도 쉽지않은 듯 해서 결국 이번 여름에는 가족들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 다섯코스를 모두 걸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올 겨울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도의 올레길에 도전한다. 내친김에 올해 겨울에는 꼭 가보려고 했던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을 내년으로 미루면서 옛날부터 꿈꾸어왔던 영국의 전원을 걸어보는 일정을 포함해서 체코,  핀란드로 이어지는 해외여행까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 이렇게 우리 가족의 걷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고 우선은 3단계까지만 결심을 해보았다.

 

1차 : 2010년 여름의 지리산 둘레길 걷기 (5코스)

2차 : 2010년 겨울의 제주도 올레길 걷기 (약 3-4코스)

        2011년 여름의 제주도 올레길 걷기 (약 3-4코스)

3차 : 2011년 겨울의 해외 걷기 여행 - 영국에서 핀란드, 체코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