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흔적을 따라가는 즐거운 가족소풍 (1)
삼국유사를 따라 가는 즐거운 가족소풍 (1회차)
집결지 : 경주박물관 뒤 월성교 (구. 문화재연구소 정문)
집결시간 : 9시 20분
참가자 : 10가족 33명
월성원자력의 직원과 가족들을 위한 상반기 지역 답사 프로그램인 '신라왕의 길을 따라가는 즐거운 가족소풍' 프로그램의 후속으로 하반기에는 '삼국유사를 따라가는 즐거운 가족소풍'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번 답사 프로그램도 김구석 선생님께서 만드신 프로그램입니다. 당초에는 상반기 프로그램을 한번 더 이어가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좀 더 다양하고, 좀 더 친근하게 답사 일정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진다면 상반기에는 왕릉 답사 프로그램을, 하반기에는 테마 답사 프로그램을 하면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소는 급박하게 프로그램이 변경되기는 했지만 신청하신 분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과정을 거친 탓인지 모두들 크게 이견은 없는 듯 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답사일입니다. 정해진 모집기간을 넘어서서 하루전까지 연락이 오고 신청이 들어와서 당초 예정했던 10가족을 넘어선 12가족이 신청을 했습니다. 그래도 인원은 크게 많은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상반기에 답사일의 불참자가 많아서 가끔은 좀 썰렁하게 답사를 한 적도 있었기에 회차별로 불참을 감안한다면 답사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적절한 인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가자 숫자가 너무 적어도 진행하시는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도 들고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오늘 집결지는 월성교(박물관 뒷편에 있는 다리 이름이 월성교입니다.)로 잡았지만 예전에 문화재연구소였던 곳의 잠겨진 정문앞에 차를 세우고 집결하였습니다. 오늘은 첫날이어서 교재로 사용할 삼국유사와 일인용 매트도 나누고, 전체 일정표와 오늘 하루 마실 생수 그리고 오늘 답사 자료를 배부했습니다. 지금은 김구석 선생님께 답사에 대한 안내를 듣고 있습니다.
일정교(孝不孝橋)
월성교라 이름 붙여진 현재의 다리 안쪽으로 옛날의 돌다리 흔적인 석재들이 울타리 안에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저 다리는 일정교라고 부르기도 하고, 전해 내려오는 이름으로는 효불효교라고도 합니다. 어릴 때 봤던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로 그 효불효교입니다. 새벽마다 개울을 건너서 남자를 만나러 건너마을에 다녀오는 홀어머니를 위해서 몰래 자식들이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효도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불효가 되는 유교적 사상에서 효불효교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고 하네요...
다리 위에서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설명을 하시는데 도로에 생각보다 차들이 많이 다녀서 좀 위험한 느낌이 들어서 신경이 쓰이더군요. 혹시나 싶어서 어린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설명도 제대로 못 들었습니다.
월성교에서 바라보면 바로 앞에 일정교의 흔적들이 보이고 저 멀리 고속도로로 이어지는 고운교가 보입니다. 고운 최치원의 상서장이 있던 터(지금의 상서장은 현대에 새로 지은 건축물) 근처에 있는 다리여서 고운교라고 이름 지었는가 봅니다.
인용사지
오릉 방향으로 조금 걸어 들어오면 왼쪽에 경계를 쳐놓고 발굴을 하고 있는 터가 있습니다. 이 곳이 인용사지라고 하는데 실상은 정확한 증거는 없는 상태라고 합니다. 다만, 1932년에 일본인 학자가 확실한 고증없이 임의로 이름을 붙였다고 하네요.
인용사는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을 위하여 세운 절인데, 김인문은 23세에 당나라로 건너가 보국대장군의 지위에 올랐고 죽은 후에는 신라에서 태대각관으로 추증되었다. (신라의 태대각관은 김유신, 김인문, 김양 등 3명 밖에 없다고 합니다.)
월정교 복원현장으로 이동하는 중. 오늘은 이동하는 행렬이 좀 깁니다...
월정교 복원 공사 현장에 설치된 현황판 앞에서 월정교에 관한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월정교가 그림에서 처럼 복원이 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기 힘들었던 그런 모양의 다리가 완성이 되는 셈이네요. 그리고, 예전에 원효대사께서 요석공주와의 인연을 맺기 위해 건넌 다리는 월정교가 아니교 근처에 있었던 유교였다고 하네요.
요렇게 벽체에 튀어나와 있는 돌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고 하네요. 저도 별 생각없이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입체적으로 돌을 조적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요것이 돌못이라고 하네요.
위에서 보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길이가 짧은 돌들의 중간 중간에 요렇게 길게 해서 깊이 박혀 있으면 돌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겠네요. 이 돌못은 신라의 건축물에서 자주 발견되는 형태라고 합니다.
굵은 원목들로 월정교가 지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다리를 거대한 집처럼 지붕을 올려놓은 것을 보면 굉장히 화려한 다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원 현장 앞에서 다시 선생님의 설명은 이어집니다.
월정교 복원 현장에 요렇게 자료들을 전시해놓은 홍보관이 있습니다. 월정교 복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이 홍보관에 와서 찬찬히 자료들을 읽어보면 될 것 같네요.
짧은 동영상도 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 위쪽으로 남산의 북쪽으로 위치한 작은 산인 도당산이 보입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남산의 북쪽 산인 우지산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동으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주변에 보이는 천관사지, 제매정, 사마소 등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시는 중입니다. 주변에 이렇게 친숙한 이름의 유적이 많은데도 그냥 지나치면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죠...
여기는 최부자댁으로 들어서는 골목 입구입니다. 최부자 고택의 일부를 개조해서 만든 한정식집인 요석궁이 있는 이 골목의 끝에 최부자댁이 있고, 그 왼편에는 우리 나라 최고의 제조주로 손꼽히는 교동법주를 만들고 판매하는 교동법주집이 있습니다.
향교로 들어가는 입구 길목의 나무그늘에 앉아서 잠시 해설을 듣고 있습니다.
이제는 계림을 옆으로 끼고 월성으로 이동하는 중.
여기는 계림입니다.
월성으로 올라가기 전에 저 멀리 보이는 첨성대에 관해서 잠깐의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이제 첨성대를 뒤로 하고 월성으로 오르는 길.
월성에는 키가 큰 부용화가 길 옆으로 줄지어 심어져 있습니다. 꽃은 몇 송이 남아 있질 않네요.
언뜻 보면 개량한 무궁화 같은 느낌을 주지만, 접시꽃보다 더 넙적하게 큰 모양의 부용화입니다.
여기서는 예전에 박통 시절에 월성문화제를 할 때, 유적과는 상관없이 행사를 위해서 만들어진 제단 같은 형태의 구조물에 얽힌 에피소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월성에 있는 석빙고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석빙고에 보관된 얼음은 임금님의 수박화채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는, 말하자면 식용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시체 부패 방지 등의 의료용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저 건너편에 있는 숲에서 마지막 해설 강의를 듣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중입니다. 왼편에 보이는 나무가 선덕여왕 촬영지여서 한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던 곳입니다.
풀섶사이로 뛰어다니던 방아깨비가 규민이에게 잡혔습니다. 마당의 메뚜기를 자주 쫓아다니다보니 이젠 방아깨비도 곧잘 잡네요. 근데, 방아깨비는 잡으면 다리가 잘 떨어져서 웬만하면 안 잡는 것이 좋다네...
소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마지막 해설 강의를 듣습니다. 오늘 들르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월지(안압지)에 관한 이야기 등등...
멀리 풀밭에서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으러 다닌다고 바쁩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자리를 정리하면서 선생님께서 단소를 꺼내 드셨습니다. 뽀너스로 한 곡조...
아이들은 단소가 신기합니다. 저마다 한번씩 불어보기를 원하지만 불어도 소리는 안 나지요 ~~~
근처에 오래 살았어도 월성에서 박물관 쪽으로 나있는 뒷쪽의 숲길은 오늘 처음 가보네요. 큰 나무사이로 이렇게 숲길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오른쪽으로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데, 이렇게 큰 참나무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기장입니다.
오늘의 뽀너스 강의 !
박물관 뒷편에 세워놓은 차로 와서 시간이 있는 분들만 다시 박물관에 와서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해설을 끝으로 첫번째 즐거운 가족소풍을 마쳤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하는 답사여서 편안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