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여행 (4) 김춘수 유품전시관
해저터널에서 돌아나와 다시 차로 통영대교를 지나서 미륵도로 향했다. 미륵도에서 첫번째 들를 곳은 김춘수 시인의 유품전시관이다. 어제 저녁에 한번 헤맸던 탓에 쉽게 찾았다. 그 사이에 빗발은 좀 더 굵어져 가랑비 수준을 넘어서 다니기에 불편하게 만들었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로 유명하지만, 대학 시절에 떠돌던 오명이 하나 있었다. 내가 대학 다니기 이전에 이미 영남대학교의 교수로서 재직했던 흔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악명높은 제5공화국의 전국구 국회의원 뱃지를 달게 된 사실이었다. 학교내에서는 이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하나의 해프닝으로 남겨질만한 사실일 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만한 사실은 아닌 것 같다.
어쨌건 김춘수 시인의 시는 아름답다. 가장 유명한 꽃도, 교과서에 실려 있던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도 그렇고, 제목으로 많이 회자되는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내리면, 그리고 꽃을 위한 서시 같은 것들이 내가 알던 그 분의 시이다. 정제되고 압축된 시어를 사용해 예술성이 높은 시를 만들어내는 시인...
김춘수 시인의 유품전시관은 오랜만에 다시 그의 시를 읽으면서 시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곳이다.
김춘수 시인은 1922년 통영에서 태어났고 2004년 영면했다.
김춘수 유품전시관 (http://cafe.daum.net/Iyargil에서 퍼옴)
2008년 개관한 전시관으로 시인의 자필 원고 126점과 사진을 비롯해 생전에 사용하던 가구와 옷가지 등 유품을 전시한다. 2층 전시관 한쪽은 생전에 기거하던 방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1층에 전시한 고치고 고친 그의 원고는 산고의 고통을 이겨낸 희열이다. 전시관을 지키고 계신 분께 듣는 [꽃]의 시 해설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설명을 부탁드리면 흔쾌히 응해주신다. 무료관람, 월요일 휴관
건물의 외관은 김춘수 시인의 높은 예술감각과 달리 의외로 딱딱하기 그지 없다. 그냥 옛날 관공서 건물같은 외관이 조금은 그분의 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불편한 느낌을 들게 했다.
유품 가운데서 가장 관심이 가던 것이 능란한 필체로 쓰여진 육필원고들이었는데, 그에 못지않는 걸작이 바로 이 상장이었다. 누군가가 직접 쓴 듯한 이 상장의 수여자는 청마 유치환. 혹시나 그분이 직접 쓰신 글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춘수 시인의 생활 공간을 재현해놓은 공간.
입구의 대형 걸개사진 앞에 선 규범이와 규민이. 아직은 이 분을 알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언젠가 그 분의 시를 읽으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오겠지.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 춘 수 (金 春 洙 1922년~ 2004년)
1922년 11월 25일 경남 충무에서 출생,
통영보통학교 - 명문 경기중학교에 입학 - 5학년 때 자퇴
1940년 일본대학 창작과에 입학
1942년 12월 사상 혐의로 퇴학 처분
충무에서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
통영중학 교사로 재직 시절인 47년 첫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
1949년 마산중학으로 옮김
제2시집 <늪>, 제3시집 <旗>, 제4시집 <隣人>을 출간
1960년대부터 해인대, 경북대, 영남대 교수
1981년에는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
수상: 한국시인협회상, 자유아세아 문학상, 경상남도 문화상, 대한민국 문학상 등
1982년에는 문장사에서 詩와 詩論에 대한 <김춘수 전집>을 출간하여 회갑 맞이 작품 정리를 시도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세계의 여행을 통해서 그의 무의미 시를 다져 가고 있다.